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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공모전

[2021년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 수기 공모 우수작] 카페 Re_봄(서부도서관) 김인우
이  름 : 관리자
시  간 : 2021-11-17 10:48:43 | 조회수 : 1010


이제부터 청춘이다


 

유니폼을 입고 앞치마를 두르고 모자를 쓰고 가슴에 이름표를 단다

출근이다

 

이제 막 가슴과 마음이 부풀어 오르던 시절 가슴에 이름표를 붙이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 까마득하게 그리웠던 시절을 건너 건너와 이제 다시 이름표를 달았다

무려 환갑이 지나서구나

 

모든 것이 반짝이던 그 시절에는 내가 환갑이 지날 것이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나 이제 보니 별거 아니었구나

그저 살아보니 살아졌구나

 

다방에서 설탕 두 스푼 프림 두 스푼을 넣은 커피를 마시며 친구를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커피숍에서는 원두 커피를 마셨다

이제 우리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와 카페 라떼를 주문하고 벨을 받고 기다린다

 

그렇게 우리는 소녀에서 숙녀로 아줌마로 이제는 할머니로 그 대명사를 바꾸며 살아왔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고유명사는 잊어버리고 살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노인이 되어 버렸다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듯

59까지 지니고 살던 중년의 아주머니가 60이 넘자 갑자기 할머니가 되어버렸다

시간은 어제에서 오늘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지만 우리는 갑자기 계단을 훌쩍 건너 뛴 것이다

 

20-30 여년 열심히 다니던 직장을 오늘 아침부터 가지 않아도 되는 남편과 함께

전혀 바쁠 것 없는 두 노인만 남아 집만 덩그러니 지키고 앉아 있는 꼴이 되었다

머리로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가슴은 더 인정이 안 된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늘 부러운 게 있었다

나이 많고 뚱뚱한 여자들이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회장님 비서도 하고 도서관 사서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스튜어디스까지

직장일 수도 있고 자원 봉사도 있었을 거지만 그 나이에 그 몸매에 저리도 당당히 일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늘 부러웠다

 

그런데 누군가 노인 일자리 사업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시니어 클럽

그래도 다른 나라 말로 하니 그럴듯해 보였다

이제껏 나는 나라에서 하는 일이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젊은이들 세금 걷어서 힘없고 별 쓸모없는 노인들에게 돈을 펑펑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늙어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제 노인의 삶이 너무 길어졌다

노인으로 살지 않은 세월보다 노인으로 사는 삶이 더 길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이 긴 남은 세월을 무얼 하고 보내야 할까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들 뒷바라지 하고 돈 버는 일에서 살짝 밀려나 있어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바쁘지 않고 허덕거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삶이 무료해지고 헐거워지기 시작했다

 

인생을 오래 산 어느 노 철학자가 말했다

자신은 60부터 80까지의 삶이 참 행복했노라고

간절히 내 삶도 그런 시간이 주어지길 바랐다

 

그러다가 이 일이 나에게 왔다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더 이상 젊지 않은 몸과 마음으로 수업을 듣고 실습을 하였다

이제껏 믹스 커피로만 무장되어 있던 우리의 입맛과 손 동작들이 에스프레소 샷을 내리고 카페 라떼의 우유 스티밍을 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담는다

 

익숙하지 않아 낯설어 늘 허둥거린다

레시피 북이 없으면 당황하여 머리 속이 텅 비기도 하고 외우고 외워도 돌아서면 또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이 일이 좋고 재미있다

도서관이라는 곳도 좋고 커피를 만진다는 사실이 더 근사하며 비록 일주일에 두서너 번이지만 이 일이 주는 활력과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여기저기 소문을 내고 다녔다

나는 이제 카페에서 일하는 할머니라고 다들 부러워했다

 

그렇게 서툴지만 조금씩 일이 손에 익어갈 무렵 다시 휴관이 되고 언제 다시 개장이 될지 모르는 날들이 지나갔다

다시 무료하고 나른한 일상이 되풀이 되었다

위드 코로나가 절실하다고 입에 달고 다녔다

소상공인들의 마음이 누구보다 와 닿았다

 

그러다가 이제 다시 개장을 하였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직 레시피가 머리 속에 뒤죽박죽 뒤엉켜 힘들고 때로 서툴러 실수도 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누구들인가?

그 어려운 밥과 반찬을 레시피 보지 않고도 순서대로 척척 해 낸 이 땅의 아줌마를 거친 사람들이 아니던가?

곧 밥하듯이 반찬 만들 듯이 척척 어떤 주문도 받아내지 않을까

 

함께 일하는 언니, 친구들이나 새파랗고 풋풋한 매니저나 우리를 도와 주시는 센터의 팀장님이나 그 외 분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고 고맙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 중에서 나는 특히 이 커피 매장에 와서 커피나 음료를 사 가지고 가시는 분들이 한없이 고맙고 감사하다

또 부모들과 함께 와서 엄마에게 젤리나 빵 음료를 사달라고 하는 아이들이 그렇게 사랑스럽고 이쁠 수가 없다

그들이 돈을 지불하고 상품을 사 가는 당연한 행위지만 손님을 기다리는 심정이 되어보니 더 감사하게 와 닿는다

 

매월 일정표에 리봄 카페 스케쥴을 정리하고 혹시 그날을 놓칠세라 몇 번을 확인하고 집을 나선다

 

삶이 조금씩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Re

다시 봄

그러나 우리는 이제부터 새로운 청춘이다

이 일로 인해 우리는 다시 어떤 일이든 도전을 하고 배우고 찾을 것이다

그리하여 남은 날들 좀 더 재미있게 다양한 경험을 하고 사귀고 나아갈 것이다

 

다시 유니폼을 입고 이름표를 달고 소풍처럼 출근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