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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공모전

[2021년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 수기 공모 우수작] 주정차계도 김춘학
이  름 : 관리자
시  간 : 2021-11-16 17:49:08 | 조회수 : 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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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차계도 김춘학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졌다.

몇년 전에는 마트에 다녀 오려고 버스정류장을 찾으니 잘 보이지 않았다.

소녀시절 그 때처럼 눈이 밝지는 않지만 아직 내 나이 치고 좋다고 자부해 왔는데 심장이 덜컥 소리를 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쳐다보니 알던 그 위치 그대로에 버스 정류장 표지판이 보였다.

가슴을 쓸며 아직은 괜찮구나 하는 말을 괜히 내뱉았다.

버스정류장 앞에 세워진 차들이 문제였다.

아무렴 키도 작은데 커다란 차 두대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으니 안보일 수 밖에.

그래도 요즘은 이런일이 적다.

집에서 손주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내는것도 좋지만 조금이라도 젊을 때 돌아다녀보자 싶어 노인 일자리사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일자리 사업이라 해서 젊은 애들마냥 컴퓨터로 뭘 해야하나 했더니 어디가든 할 수 있는 일이니 매일 하나쯤은 있는 법이었다.

이른 점심을 먹고 나가서 동네를 걸으며 불법 주정차를 찾으면 되는 일이라 매일 산책하는 나에게 딱이다.

저번의 울분이 생각나 건널목 횡단보도 떡하니 막는 자동차에다 안내문을 붙였다.

'이곳은 불법 주정차 단속구역으로 견인 또는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으니 차량을 이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문구에 적힌 말이 제법 마음에 든다.

거기다 나보다 작은 아이들은 횡단보도를 가린 자동차 덕분에 더 답답했을 것이다.

스쿨존으로 가서 열심히 주정차계도 안내문을 붙였다.

요즘은 몇번 하다보니 제법 요령이 생겨 어디부터 가면 좋을지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도 제일 열심히 도는 곳은 아무래도 정해져 있는 자기 구역 근처다.

안내문 덕분인지 요 며칠은 주차된 자동차 수가 적다.

물론 모든 불법이 사라지리라 순진하게 믿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다 보면 나아지겠지 이러다 보면 눈치를 보겠지 하는 작은 희망이 생긴다.

모두 자기들의 사정이고 이유가 있다지만 그래도 지킬건 지켜야 다들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이제 겨울이 시작되었다.

밖에서는 코로나 랍시고 마스크를 , 안에서는 사회적 거리를 지킨답시고 떨어져 앉으니 계절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할 일을 찾아서 할테고 이 시기가 얼른 지나가길 바란다.

봄이 오고 모두 마음의 여유가 자라면 그 때의 노인 일자리 사업은 좀 더 다른 일이 시작 되었을지도 모르니 나는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