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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공모전

[2021년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 수기 공모 당선작] 어린이집도우미 강복엽
이  름 : 관리자
시  간 : 2021-12-14 10:51:24 | 조회수 : 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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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집도우미 강복엽

 

살짝 옷깃이 여며지는 늦가을. 설악산에는 단풍이 예쁘게 물들었다 하고,

낙엽이 떨어져 바람에 쓸려가는 모습이 어쩌면 우리네 인생, 삶이 스쳐가는 듯 합니다.

모처럼 참으로 오랜만에 수십 년 동안 손 놓아버린 손글씨를 이렇게 쓰게 되다니, 참으로 아득하기만 합니다.


모든 매체 글의 문장들은 현대 문명의 도움으로 손글씨를 써야 할 필요가 없어져 버린 지금,

옛 시절을 추억하며 이런 기회를 얻게 되니 새삼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가난했지만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모두가 가난했기에),

천방지축으로 뛰놀던 그 시절이 지나고 어린 나이에 결혼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결혼이 뭔지도 모를 만큼 순진했고, 철없던 그 시절 그 나이에.

결혼은 그냥 남녀가 한집에서 같이 사는 것인가?’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곧바로 임신을 했고,

첫째 둘째를 연년생으로 낳고, 셋째도. 이렇게 해서 졸지에 3명의 아이가 생겼습니다.

더러는 애가 애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정신없이 세월이 훅 지나갔습니다.

그러기를 13, 우리가 결혼한 13년 만에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냈습니다.

아니, 가버렸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무지하고, 어리석고, 바보 같기만 한 나를 두고, 세 아이를 두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출근길 빠이빠이가 영영 빠이빠이가 돼버렸습니다. 어쩌라고.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요즘 같으면 그 나이에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미혼여성들도 더러 있는데, 내가 과부가 되다니!

저 어린 세 아이는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인가? 아빠 없는 아이로 자랄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습니다.

세상의 편견은 또,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상처가 되고, 위로라고 하는 말도 결코 위로될 수 없었습니다.

상실감에 길을 걸어도 허공을 떠도는 것 같았고, 사막 한가운데 던져진 작은 미물 같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사는게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 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들은 나보고 돌밭에 두어도 살아갈 사람이라고들 했습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여자가 팔자가 세서 재수 없는 여자라서라고 한 말들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얘기를 뒤로 하고, 이제나는 세 아이를 책임져야 하고 현실을 부정할 수 없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습니다.


숱한 시행 착오를 겪으며 세 아이는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삶 안에서 성실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한 내가 이런 글을 적는 것도, 단어 선택, 기억이 없어, 하고자 하는 말을 다 할 수도 없지만,

지난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이젠 좀 쉬어도 될까 싶은 요즘.

이름도 생소한 여러 질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난치성 질환, 류마티스, 면역질환, 관절염, 이석증 등 이런 질병들을 한꺼번에 겪으며

이과 저과 이병원 저병원을 드나들며 그러기를 7, 이제 어느 정도 호전이 되었고 현재도 정기적으로 관리 관찰치료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던 사람이 일을 안하면 죽는다고 했던가요?

어느 날, 아파트 게시판에 시니어클럽의 홍보유인물을 보게되었습니다.

,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시니어클럽을 찾게 되었고, 지금 이 일을 하고 있고,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하루종일 TV만 보고, 설저지는 미뤄두고 청소도 뒤로 하고, 빈둥빈둥 시간되면 밥한술 대충 걸치고,

거의 무기력하고 나태하고 의욕이 없고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나에게,

이젠 어디 출근할 때가 있고일할 때가 있다는 게 참으로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돈을 준다니.

이렇게 해서 처음 주어진 일이 어르신들을 도와줘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르신들 댁에 방문하는 일이 서로 낯설고 익숙지 않고 어설펐지만,

방문이 거듭될수록 어르신들의 이런저런 애환과 고충들을 듣다 보면

지난 세월의 고통과 아픔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내 얘기처럼 가슴 아프고, 공감되며, 같이 웃고 울게 되며, 서로 동화되어 갔습니다.

가정에서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들이었기에 어렵지 않았고 내 일상이었습니다.

때로는 늘어진 테이프처럼 계속 같은 내용, 같은 레퍼토리를 매일 같이 듣게 되니, 때로는 지겹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어르신들은 누군가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데가 참으로 다행히 되어주는 내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 숱한 어려움과 애환들, 어느 한 사람이라도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그분들도 꽃다운 젊은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남편을 일찍 보내고 온갖 고생 하며 자식들을 키워봤을 그분들.

그분들의 모습이 머지않은 날 나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할머니께서 베란다 쪽 주방 문이 열리지도 닫혀지지도 않는다고 하시면서, 겨울 추워지면 큰일이라고 했습니다.

세찬 칼바람이 들어온다고 난방비 아끼려고 방 한 칸 겨우 난방하고 있는데.

저는 그 문이 항상 열려 있어서 환기 차원에서 열거 둔 것인 줄 알았습니다.

내가 가 있어 봐도 바람세기가 보통이 아니었고, 이리저리 열어봐도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큰 공사가 될만한 상황이었습니다.

하루하루 방문 횟수가 늘어나며 그동안 집안 곳곳에 손이 미치지 못한 묵을 때도 차츰 벗겨져 나가니 기쁘고 기분이 좋았는데.

이젠 저 문을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추워 지기 전에 뭔가 조치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경제력이 있으면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지만, 상황이 그렇지 못하니 며칠을 궁리 끝에 방법을 짜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 어떤 집 앞에 버려진 쪽대를 얻고 다이소에서 못을 사고

경비실에서 비닐을 얻고 이렇게 준비를 해서 뒷날 아침에 어르신 댁을 방문했습니다.

비닐을 네 겹으로 접고 문길이만큼 재단을 하고, 망치를 찾고 의자를 찾아 올라서야 했습니다.

저도 나이가 있는지라 조심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어르신 보고는 밑에서 비닐을 잡고 붙들고 있으라 하고,

저는 하나하나 위에서부터 아래로 꼭꼭 눌러가며 못질을 해나갔습니다.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럴듯한 비닐 문이, 바람막이 문이 완성되었습니다. 정말 제대로였습니다.

어르신과 둘이서 손뼉을 치며 좋아야 하며, 정말 기뻤습니다. 어르신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자신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하시며 좋아라 하셨습니다. 보람도 있었습니다.


두드리면 열리고 찾으면 얻는다고 했던가요.

행복한 불행의 가치 기준이, 내적인 것에 두느냐, 외적인 것에 두드냐에 따라 행복할 수도 볼행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러나 사람들은 가난 가운데서 숱한 고난을 겪어낸 가운데서 만족을 느끼기보다

남이 부러워하고 칭찬받고 그럴싸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그런 모습을 더 바라는 것 같습니다.

죽을 만큼 힘들고, 숨이 막히도록 조여왔던 사람을 산 이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어떤 마음, 어떤 정신으로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가 한 사람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지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 나는 평화롭고 더더욱 재수 없는 여자도, 팔자가 쎈 여자도 아닙니다.

다만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먼저 체험했을 뿐입니다.

그것은 세상 모든 이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다 겪게 되는 것일 테니까요.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다만, 내가 세상에 사는 동안 나만의 생각, 나만의 이기적 삶은 아니었든가, 반성해볼 뿐이며,

나에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해냈을 뿐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던, 어르신들을 방문하는 일도 봉사하는 마음이 빠지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내가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또 내일을 맞을 수 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어떤 작은 것도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되는 것처럼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 뿐입니다.

정말 짧은 식견으로 눈도 침침하고 맞춤법도 틀리고 문장력도 없고 어느 것 하나 내놓을 것 없는데

수기를 쓰자하니 부족하지만 이렇게 두서없이 적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