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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공모전

[2021년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 수기 공모 당선작] 카페 Re_봄(능력개발원) 구복희
이  름 : 관리자
시  간 : 2021-11-30 09:11:56 | 조회수 : 1074

2021 노인일자리사업 활동수기 공모전 


1. 어허, 겨울이 왔어

  뽀시락 뽀시락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면, 지리산 골짝에서 매운바람이 불어오지.

밤은 끝도 없이 길어지고, 새벽이 와도 아침 해는 더디게 더디게 게으름을 피운다.

좀이 쑤셔, 기다리지 못해, 뒷걸음으로 계단을 주춤주춤 내려가 동네를 걷는다.

딱히 이 시간에 갈 곳도 없다. 하지만, 지난밤 어둠과 함께하며, 잠들지 못해 뒤척인 시간들이 힘들어 걸어야 했다.

 나에게도 겨울이 왔어. “어허 겨울이 왔어!” 밤이 길게 느껴지고, 잠들기 힘들어지면, 내 인생에도 겨울이 온 거지.

잠들지 못한 체, 생각나는 이런저런 추억들은 순식간에 날 50년 전으로도 데려다 놓지만,

곁에서 누군가 같이 말을 나눌 사람이 없네. 회상을 혼자 하기엔 너무 외롭고, 우울해 진다.

50여 년 전 진주로 시집와서 자식 넷 키우며 지난 세월들. 함께 했던 남편도 5년 전에 보내고,

자식들 다 내보내고 혼자 지내려니 외롭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2. 한겨울에 개나리가 폈어

 진주서부시니어클럽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일할 분들을 모집한다고 해서

서류를 넣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아이구야, 나보다 10년은 훨씬 더 어린 분들이 줄을 서있다.

안되겠다 싶어, 포기하고, 면접 보는 이에게 그냥 하고 싶을 말을 내뱉고 왔지.

“내가 여기 출근해서 돈을 벌겠다는 게 아니야”

“집에 혼자 우울증으로 지내는 날 좀 살려 달라는 거야.”

“너무 외롭고 힘들어”

 오마나! 내 인생에 어찌 이렇게 기쁜 일이 일어났는지? 뜻하지 않는 합격 통보를 받고,

기쁜 마음에 자식들과 여기저기 소식을 전하고, 축하받으며 너무 행복해서, 라디오에 사연도 보냈지.

평생을 살며 처음으로 얻은 직장이었기에 가슴이 콩닥거렸고. 지금 생각해도 또 떨려. 무릎만 성해도 팔짝팔짝 뛸 판이야.

 교육생으로 바리스타 일을 배우며 하나하나 알아 갈 때, 또 얼마나 뿌듯하고 좋았든지.

아메리카노 커피를 내리고, 초코라떼를 만들고 고구마 라떼를 만들고, 너무 예뻐 사진을 찍고,

같이 한 교육생들과 웃고 떠들며 새로운 인생을 찾은 거지. 내 인생의 한겨울에 개나리가 활짝 핀거야.

정식으로 첫 출근 때 유니폼을 입고, 이름표를 달았는데, 그 안에 내가 있어.

너무 예쁘게 내 이름이 또박또박 정확히 깨끗하게 있는 거야. 나를 찾았어. 내가 여기 있어.

 

3. 비가 내린다. 쉼 없이

 손님을 응대하고, 주문 받고, 만들고, 손님께 드리고.........그러고 나면 이런 말들이 돌아온다.

“너무 대단 하세요. 어르신!”

“너무 멋있어요!”

“너무 맛있어요!”

 세상은 이래서 또 살만해 지는구나! 싶었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도 함께 하는 시간들이 얼마나 즐거운지, 웃음이 일상이 되었어.

 다시 되찾은 기쁨도 잠시. 코로나 확산이 심각해지며,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되고, 외출도 못하고 다시 힘든 시간으로 돌아갔어.

지루한 일상으로, 집안에만 있어야 하는 감옥 같은 시간들로.

유일한 낙이라고는, 거실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행인들 보는 거였어.

 

4. 은행잎 사이로 햇빛이 반짝거린다.

  점점 수렁으로 더 깊이 빠지는 코로나 때문에 고독은 또 불면증을 불러왔어.

백신 후유증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쯤, 세상이 일상을 조금씩 회복해 가며, 다시 출근을 하게 되었어,

  그제야 가로수 은행잎 사이로 햇빛이 반짝거리는 걸 볼 수 있고, 솔솔 바람이 느껴지는 거야.

다시 직장으로 출근하는 며칠 전,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릴 때부터, 설렘은 출근길에 길에 떨어진 은행을 밟아도 행복하게 만들었어.

  노인일자리 사업이 내게는 새로운 삶을 준거지. 살아야 할 이유를 선물한 거야.

이런 사업들은 더 많이 늘려, 더 많은 분들에게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게,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하면 좋겠어.